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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나들이보고서

김포지역 문화답사 스케치

 

          경기도 김포 지역 문화답사 스케치

 

  2014년 7월 17일, 경기도 김포 지역 문화답사를 위해 버스로 4시간을 달렸다. 서울을 지나 가고도 한참을 가야했으니, 는 꽤 먼 거리였다. 그러나 이런 기회 아니면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려니 생각하니, 그런대로 견딜 만한 여정이었다.

  김포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자리잡은 인구 30만 명 정도의 도시다. 김포 하면 비행장을 떠올릴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을 정도로 나에게는 생소한 도시였다. 김포의 첫 번째 방문지는 장릉이다. 조선 14대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인 정원군과 인현왕후의 능이 있는 곳이다. 정원군은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후에 원종으로 추존(追尊)되었다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여느 조선왕릉처럼 산자수려하고 광활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범인(凡人)의 눈에도 명당처럼 보였다. 능역에 조성된 소나무 숲길은 산책하며 자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숲길을 벗어나자 장능이 눈앞에 나타났다.

  정원군과 인현왕후가 묻힌 당시에는 홍경원이라 불렸으나, 원종으로 추존된 후에는 장릉으로 격을 높였다 한다.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에게만 붙이는 능의 이름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답사하는 동안 3~4분에 한 번씩 능역 위로 비행기가 나지막하게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김포공항이 가까워서겠지만, 혼령들이 꽤 혼란스럽겠구나 싶었다. 하기야 그 시절에 이곳 하늘 위로 비행기라는 괴물이 날아다니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점심을 마친 후 강화도를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성곽에 올라섰다. 겨우 해발 376m 문수산이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니, 이곳은 평야지대가 맞는 것 같다. 현재는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있다.

  문수산성은 김포반도에서 갑곶나루를 중심으로 문수산 능선을 따라 총 둘레 6.2km에 이르는 대규모 석축 산성으로, 숙종 때 축성되었다. 조선 말기 프랑스군을 맞아 격전을 벌인 병인양요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당시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의해 프랑스 선교사들이 희생을 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에 침입하여 강화부를 점령했다. 문수산성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가진 총포의 위력을 당해낼 수 없어 패배하고 말았으며. 이때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산성에서 내려다 보니, 강화해협의 험한 물결 속에는 조선 말기의 혼돈의 역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 같다. 

  이어서 이날의 마지막 답사지인 애기봉에 올랐다.  6.25와 남북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임진강 너머에 북한 지역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였다.  당시의 이곳을 중심으로 한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을까. 저 너머 북한 동포의 힘겨운 삶을 생각케 했다. 말이 필요없는 역사의 현장에 서니 가슴이 찡했다.  (2014.7.17 )

 

(↓ 여기부터는 장릉입니다.)

(↓ 여기부터는 문수산성입니다.)

(↓ 여기부터는 애기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