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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의 ‘애도사(哀悼辭)’

 

                20여 년 전의 ‘애도사(哀悼辭)’

 

(이 애도사는 1992년 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큰아버님께서 보내주신 애도의 글입니다. 큰아버님은 생존 시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셨고, 명필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지난 시월 초 동생의 병이 심상치 않다기에 전주의 병원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병원 측의 사정으로 가지 못하고 광주에 있다가 급한 전화를 받고서야 갔던 것이다. 나는 행보(行步)가 여의치 못하여 이렇게 늦은 것이다. 동생의 처량한 모습으로 보고 비통할 뿐이다.

  내가 14세에 동생이 출생하였다. 나는 이미 다 늙었으나 동생은 늙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죽으면 동생이 나의 못다 한 일을 다 할까 하였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니 나는 어찌 하란 말인가! 통곡할 뿐이다.

  아버님이 가실 때에 염라국(閻羅國)에서 궁궐을 짓고 현판(懸板) 글씨를 쓰기 위하여 초청하였다는 말이 있어 그때에 화제 거리가 되었었다. 동생도 그러한 일이 아니던가! 한다. 옛말에 복이 있는 사람은 나쁜 듯한 때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으로는 너무 나쁘지 아니한가!

  글씨에 전력(全力)하여 십여 년을 고생하다가 이제 대성(大成)을 앞에 두고 마음에 기쁨이 있고 아이들은 효심이 극진하여 모든 생활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휴일이면 각기 아이들을 데리고 고기와 과일을 사가지고 와서 뜻을 기쁘게 하고, 삼십여 평 아파트를 사서 거처(居處)를 평안히 하고 용돈도 충분히 댔다고 한다.

  오늘날의 이 험한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오, 인생 말년에 극락(極樂)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좋은 때에 떠나게 되니 얼마나 아쉬울까 마는 크게 생각하면 수(壽)도 칠십이 거의 되고 자손이 이렇게 좋은 때에 가는 것도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봄에 백양사 서옹 스님이 내가 지은 시(詩)에 따라 시를 짓고, 글씨를 써주시면 현판에 각(刻하)여 운문암에 붙인다고 하여 동생 글씨를 천거(薦擧)하여 썼던 것이다. 지난 달 초에 현판의 각자(刻字)가 완성되어 운문암에 붙였다는 전화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동생을 만나보지 못하여 이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느 때에 다시 만나 못다 하고 쌓인 말을 다시 할 것인가! 통곡할 뿐이다.

 

                                                                                   1992년 11월 20일   사형(舍兄)  가은(葭隱)

 

(우리 집 거실에 걸린 아버님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