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엿들은 이야기
이웃 식탁에 자리 잡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들으려고 작정한 것은 아닌데, 점차 눈길이 가고 엿듣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나 분위기로 봐서 아마 딸이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연로하고 몸이 좀 불편해 보였으며, 외식에 그리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관심은 딸과 아버지에게 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딸은 살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드시기 편한 음식점으로 골랐으니 많이 드세요. 아버지!”
지난 번 식사 대접 때 아버지의 이가 성하지 못한 걸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고기 음식을 사드린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며,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딸의 얼굴에 그게 쓰여 있었습니다.
딸은 부모님의 나눔 접시에 끊임없이 음식을 떠 놓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씩 덧붙였습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 아버지!”
말끝 마다 꼭 '아버지!‘를 붙이는 데, 정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입 무거운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듯,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붙였습니다. 딸이 아니었으면 긴 침묵이 자리를 무겁게 했을 것입니다.
딸의 세심한 배려와 정겨운 말투에 내 코끝이 다 찡해졌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잘 드시기 때문에 그런지, 딸의 관심은 온통 아버지에게만 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남녀가 노인네의 아들 내외라는 것을 끝 무렵에야 눈치를 챘습니다. 그만큼 오가는 이야기가 없어 다른 팀인 줄 알았습니다. 아들 내외는 의례적인 눈길을 줄 뿐 음식만 들고 있습니다. 다른 가족이 우연히 옆에 앉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가족임을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딸은 가끔 ‘오빠’라는 칭호로 불러주었습니다. 사실 딸의 신경은 온통 아버지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오빠 내외와 대화를 나눌 여지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소주 서너 잔을 든 후에야 말문이 잠시 열리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습니다. 딸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연신 말을 건네지만 아버지의 입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침묵 속에서도 시종일관 자잘한 이야기들을 건네며 아버지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드렸습니다. 자주 대접해드리지 못해 아파하는 마음이 들여다보였습니다. 아들은 무심해 보이고 딸은 살가움으로 그나마 화기가 도는 게 어찌 이 가족뿐이겠는가? 한국적 가족의 일반적 모습이라 말하기 전에, 아들인 나 또한 그 부류가 아닌 가 되돌아봅니다.
그 가족의 모습이 여운으로 남아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그 안에 나의 자화상을 비춰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 2012, 10.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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