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옛 숨결에 젖다.
2012년 9월 8일,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빗나가게 되어 ‘샘문화’ 팀의 탐방 길을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우산을 챙겨온 몇몇 샘님들은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끝까지 펼칠 기회를 가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공주 시가지는 당시 백제의 숨결이 배어있는 듯 조용하고 고풍스러웠습니다.
샘님들은 첫 번째 답사지인 공산성(공주산성)에 들어섰습니다.
공산성은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으로 당시에는 웅진성으로 불리었던 곳입니다.
해발 110미터의 높이에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곽이 쌓여져 있는데, 길이가 2660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엔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합니다.
공산성의 초입에서 금서루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습니다.
금서루를 통과하여 성곽 산책길을 따라 걸어 문서루에 이르니, 시야가 확 트이며 공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각 밑을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온 듯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요즘 역사 교육이 뒷전에 밀린 듯한데,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구비 구비 성곽을 따라 오르니, 공산성에서 가장 높은 정자인 공산정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정자 아래로는 손에 닿을 듯 내려다보이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백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오늘에 이르렀으나, 강산은 말이 없는 것…….
한 바퀴 빙 돌아 내려오니, 다시 문서루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는지, 카메라맨이 리포터와 출연자에게 앵글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행길에 드문 볼거리를 만났으니 이 또한 행운이라, 한참을 머무르며 지켜봤습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인근에 있는 무령왕릉에 들렀습니다.
무령왕릉은 1971년 처음 발견될 당시 한국 발굴 사상 최대의 학술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던 곳입니다.
당시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을 비롯하여 108종 4600점에 이르렀으니,
그 규모와 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고분군에는 당시 백제의 위용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시조 구절이 언듯 스쳐갔습니다.
무령왕릉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공주국립박물관’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공주까지 와서 박물관을 그냥 스쳐갈 수야 없지.’
마침 동행하는 샘님이 있어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박물관 후문이 나타났습니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는 데 전화가 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내가 안 보여 차질이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관람을 멈추고 정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바삐 걸어가는데 20여 분은 족히 걸렸습니다.
‘단체로 나들이 가면 이런 사람이 한둘 쯤은 꼭 있지. ’
백제 유물에 빠지다보니, 졸지에 답사팀의 이탈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답사지인 마곡사 가는 길은, 태화산 골짜기를 따라가며 그 풍광이 참 아름다워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마곡사는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답게 웅장하고 고색이 창연했으며,
주위에는 크고 작은 부속 암자가 산재해 있었습니다.
특히 ‘춘(春)마곡 추(秋)갑사’라 일컬을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니, 봄철에 한번쯤 찾아와 볼까 합니다.
차 안에서 피곤한 눈을 스르르 감으니, 공주산성, 무령왕릉, 마곡사의 잔상들이 하나둘 머물렀다 지나갑니다.
샘님들과 함께 하여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2012. 9.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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