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의 마지막 잔당(殘黨)이 엊그제를 고비로 슬며시 꼬리를 감추었습니다. 꽃샘추위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버티던 그들도 계절의 순환 법칙 앞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소리 없이 강한 봄기운의 위력이 부드러움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이제 이 땅엔 봄의 전령들이 앞 다투어 몸을 드러낼 것입니다. 성급한 무리들은 이미 출발선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개울은 일찌감치 깨어나 잘잘거리며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산책길엔 오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으며,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졌습니다. 마라톤 매니아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쌩쌩 내달리며 젊음을 자랑합니다. 그들은 걸으면서도, 달리는 중에도 힐끗힐끗 봄을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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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근주필 | 봄나물의 선두 주자 냉이는 부지런한 아낙의 손에 이끌려 밥상 위에 오른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이미 안방까지 전해졌던 남녘의 꽃 소식에 우리 마을도 벌써 봄인가하여 헷갈렸었는데, 그 뒤에도 이 땅엔 서너 차례 꽃샘추위가 다녀갔었습니다. 찬 기운과 봄 기운이 공존하는 와중에도 매화는 녹두알만한 꽃망울을 달고 터뜨릴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이제 길가의 뽀얀 쑥이 입맛을 돋우며 으스댈 차례입니다.
어쨌든 겨울이 가면 이내 봄은 오고야 맙니다. 봄은 움츠렸던 만물이 가슴을 펴고 저마다 삶의 시동을 겁니다. 사람들은 땅을 밀고 나오는 새싹을 보고, 피어나는 꽃을 보고, 나르는 나비를 보며 봄을 만끽할 것입다. 봄엔 '보는 일'로 참 바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봄을 '봄(보다)'이라 하는 가 봅니다. 그러나 근년의 봄은 예전처럼 깔끔하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 좀 꺼림칙합니다. 때가 되면 갈 것은 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것들이 채우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거늘, 요즘 겨울은 선뜻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걸 보면 동장군답지 않게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년 들어 예측을 넘어선 기상이변이 매년 반복되다보니, 이변이 정상처럼 고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어차피 봄의 전령들은 일사불란하지는 않는 것이 그들의 습성입니다. 먼저 오는 것도 있고 느지막하게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의 달음질처럼 출발도 진행도 들쑥날쑥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걸 '봄'으로써 힘을 내는 계절이라는 사실에는 어김이 없습니다. 그래서 봄엔 모두들 시작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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