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요사(歌謠史)
소위 '노는 문화' 한몫 끼려면 가요 몇 곡쯤은 익혀두어야 하는 요즘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곤혹스러운 경우에 처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특히 노래방이 생긴 이후로 노래는 모임의 뒤풀이때 필수 과목처럼 되어 있습니다.
세월따라 흘러온 나의 작은 가요 역사를 더듬어보니, 나 역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나 봅니다.
가요도 하나의 문화이니까요.
(가요 입문기)
내 가요사(歌謠史)의 시작은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깨북장이 친구가 있었는데, 노래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방학 때면 그 친구와 나는 논두렁을 거닐며, 간간이 유행가를 부르곤 했습니다.
가요 맛을 잘 몰랐던 나는 그 친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정도였습니다.
대학시절엔 우리집의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한 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유행하는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받아적어 두고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레파토리는 '눈물젖은 두만강', '백마강 달밤' 등이었지만,
박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가요 입문기였습니다.
(전반기 - 총각 선생님)
피끓는 청년의 기개를 갖춘 새내기 교사 시절엔 동료나 친구끼리
소위 '노는 모임'도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노래 부를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당시 선풍적이 인기를 끌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는
총각 선생이라는 나의 수식어와 맞아 떨어져 곧바로 지정곡이 되었습니다.
교직원간의 회식에서도 친구끼리의 곗방에서도 이 노래는 빠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학부모 집의 회갑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섬마을 선생님'은 나의 단골 메뉴가 되었습니다.
특히 교대 졸업 동기생끼리 만든 계를 치루는 날엔 이 노래는 마치 국민의례에서 애국가를 부르듯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계원 모두가 총각 선생이었으니, 마치 자기 주제가인 양 불러댔습니다.
나는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통해 익혀둔 남진, 나훈아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으스댔습니다.
그땐 젓가락 장단이 유행하던 때라 계를 치루고 나면 교잣상 가장자리가 상처 투성이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친구 부모님께서는 아들 친구들이 저질러놓은 일이라 그 조차도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중반기 - 생음악 맛보기)
지금 생각하면 중년 시절이 나의 가요사 중 절정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무렵 나를 포함한 같은 직장 동료 네댓 명은 '노는문화'의 공감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일당은 퇴근 후에 미니 스텐드빠를 찾는 일이 잦아졌으며, 근원도 모르는 소위 막춤도 이때 익혔습니다.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부른 노래나 막춤도 알고보면 술김이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즈음 나의 애창곡은 '옥경이'라는 가요였으며,
이는 나의 가요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입에 올렸던 노래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동안 '옥경이'는 거의 나의 대명사였으며, 많은 사람 앞에서도 척척 부르다보니
노래를 꽤 잘 부른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후반기 - 노래방 시대)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소위 '노는문화'의 마지막 순서는 노래가 차지하게 되었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조류에 편승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나의 애창곡은 초기엔 '옥경이' '원점'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한동안 '사랑은 나비인가 봐' '정때문에' 등을 질리도록 부르다가,
요즘은 '갈매기 사랑' 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노래방 출입이 알아보게 뜸해지는 건 나이가 들면서 일오나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가요사를 살펴보면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지, 잘 불렀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더듬어보면 내 가요사도 내 인생사의 한 부분으로 나름대로 소중한 과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2010. 9.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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