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목도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어머니'라는 발신자 이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건강하시다지만 적지 않은 연세인지라 마음 한 구석엔 늘 걱정이 있습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면 첫 마디의 내용이나 음색을 유심히 듣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날의 어머니 컨디션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날처럼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얘야. 네 차 안에 내 목도리 없디? 니가 외국 갔을 때 사다준 목도리 말이여."
뜬금없는 목도리 이야기에 나는 멈칫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건강한 목소리에 일단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아끼던 목도리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많은 듯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림서 가방 속에 잘 넣었는디, 엊저녁에 찾어봉게 없서야. "
이곳저곳 몇번이고 찾아본 끝에 마지막 기대를 갖고 내게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내 차 안에 있을 거예요. 나가서 찾아볼게요."
서둘러 밖으로 나가 어머니가 앉았던 뒷 좌석을 들여다 보았으나, 목도리는커녕 비슷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 서울에서 있었던 친척들 모임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었습니다.
3월초에다 절기로 경칩이라 그런지 날씨는 그리 차갑지 않았으나,
노인네들의 나들이엔 목도리 하나 쯤은 챙겨야 할 날씨였습니다.
서울 나들이길에 둘러매고 다니셨던 그 목도리가 정읍에 되돌아와서 없어진 것입니다.
어머니께 너무 걱정마시라고 전화를 드린 뒤,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역전의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날 동행한 집안 형님들과 어머니가 늦은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이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손님들이 놓고간 물건들을 몇번이고 뒤적이며 보여주었으나, 엇비슷한 것조차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음을 조리며 기다릴 것 같아, 조심스럽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목도리 사다드릴게 너무 걱정 마세요."
"니가 캄보디아까지 가서 돈 많이 주고 사 왔을 것인디. 어쩐다냐 아까서……."
어머니는 많이 실망하신듯, 몇번이고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목도리는 내가 4년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올 때 사온 그곳 토산품으로, 그리 비싸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 동안 그 목도리를 까마득이 잊고 있었는데, 그 동안 어머니는 그걸 애지중지하며 두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아들이 사주었노라고 자랑도 했을 거고요.
그런저런 사연으로 어머니는 그 목도리를 잃어버린 게 마음이 많이 상하신 것입니다.
하찮은 물건도 정이 묻으면 소중한 물건이 되는 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요즘은 더 그러한가 봅니다.
어머니에겐 애틋한 물건이 되어버린 그 목도리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섭니다.
허튼 희망사항인 줄 알면서도, 행여 목도리를 주운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 엄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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