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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추억/*********중반기

귓속에서 기차소리가 들려요.

      귓속에서 기차소리가 들려요.


  좁은 교실에 빼곡히 앉아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크게 두 모습으로 나뉘어 보입니다.

그들에겐 대부분 아이다운 천진함이 묻어 있으나, 그 중 몇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딘가 그늘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특히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있었던 가정의 기상도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기분이 심란해 보이는 아이,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아이, 몸이 아파 보이는 아이 등…….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가정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투영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매일 매일 서로 다른 컨디션을 갖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진단하고,

그에 알맞은 처방을 하는 일이 담임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27년 전의 일입니다.

그 해 우리 반에는 유난히 그늘진 아이들이 많았었습니다.

가정결손으로 사랑에 굶주린 아이, 손버릇이 나쁜 아이, 병에 시달리는 아이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월말시험을 며칠 앞두어서인지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보였고, 나도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절정을 치닫고 있을 무렵, 교실 가운데쯤에 앉아있던 민희가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얼굴빛이 노래진 민희는 무어라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알 수 없는 손짓까지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기가 가득했던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으면서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상황이라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아이들도 겁을 먹은 채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습니다.

담임교사인 나는 반장을 시켜 양호 선생님에게 연락하는 일 외에 다른 대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미순이가 재빨리 물 한 컵을 들고 와 먹이더니,

신통하게도 민희는 제 정신을 차리고 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순이는 작년에 민희와 같은 반이어서 나름대로의 응급처치 요령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혼란을 치룬 뒤 교실 분위기는 다시 수습되고 남은 수업은 마무리되었으나, 머리 속이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 날 민희의 갑작스런 행동이 나쁜 병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작년 담임교사로부터 들은 나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 병에 의한 발작을 직접 목격하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도중에 한 남자가 갑자기 통로에 나뒹굴어지며 발작을 시작했습니다.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닌지 나는 너무 두려워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신부님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사람들을 물리고 그대로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탈탈 털고 일어나 의자에 앉았습니다.

  민희는 전에 내가 보았던 그 사람의 증상과는 많이 달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병이 하필 민희에게 왔는지 생각하면 안쓰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던 것도 알고 보니 그 놈의 나쁜 병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민희의 이상 행동은 가끔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때마다 민희는 자신의 귓속에서 기차소리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민희는 머리통을 쥐어뜯듯 감싸게 되고, 몹쓸 것이 그의 머릿속을 할퀼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약을 타다 먹는다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치료가 여의치 못한 듯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수업 중에 중요한 내용을 주입시켜야 할 경우, 아이들의 주의 집중을 위해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발적 집중을 유도하는 유연한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소 일방적이고 경직된 방법입니다.

그러나 생활 지도의 경우에는 학급 아이들이 쉰 명이 넘는 다수라는 이유로,

전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꾸지람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희의 일이 있은 뒤로부터는 되도록이면 교실 안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일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긴장감이 그를 자극하고, 그 자극이 그의 머리 속을 휘저을지도 모르게 때문이었습니다.

  학급활동이나 수업의 진행 중에도 민희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되도록이면 말소리를 낮추었습니다. 표정도 부드럽게 했습니다.

유머도 자주 사용했습니다. 꾸지람은 삼갔습니다.

  부득이 전체 아이들을 대상을 꾸지람을 할 경우에는, 비록 궁색한 방법이었지만 일부러 민희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교실 안에서 민희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 방법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뒤부터는 교실 안에서 민희의 돌발행동은 눈에 띠게 줄었습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민희 때문에 나의 학생지도 방식도 알게 모르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변화된 방식이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공부만 열심히 가르치는 열정 이전에 아이들의 세심한 곳까지 들여다보는

자상한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교실 분위기는 되도록이면 유연하게, 말소리는 낮게, 표정은 부드럽게, 꾸지람은 개별적으로…….

  이렇듯 특별한 체험은 그 후에도 나의 학생 지도 방법에 은연 중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합니다.

민희를 위한 나의 조그만 배려가 그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의 일을 통해서 선생으로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198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