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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나들이보고서

수필반 문우(文友)가 단풍에 빠진 날

 

                    수필반 문우(文友)가 단풍에 빠진 날

 

 

  산마다 푸짐한 단풍 상차림을 해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때맞춰 우리 수필반 문우 일행은 진수성찬을 즐길 수저 한 벌씩만 달랑 들고 강천산에 들어섰다. 준비치고는 너무 하찮은 듯 보이지만, 마음을 텅 비우고 왔으니 채우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다.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의 수필반 나들이는 단풍의 정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매표소를 통과하니 만산홍엽이 품을 열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주차 때문에 쌓였던 짜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단풍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진입하는 동안 자연과 한몸이 되었다.

  구불구불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저마다 달콤한 찬사를 쏟아냈다. 자연의 조화를 말로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한마디씩 거드는 것을 보면 천생 수필가가 맞다. 단풍의 화려한 엄호를 받고 있으니, 방방 뛴다 한들 누가 말리겠는가. 문우들이 떨어뜨린 수다는 수필이 되어 산책길에 굴러다녔다. 침묵과 사색도 수필이 되었다. 우리 곁을 지나치는 낯선 군상들은 우리의 심중을 헤아리기나 할까.

  굽은 길을 벗어나자 느닷없이 한 줄기 바람이 심술을 부렸다. 그 순간 갈색의 떡갈나무 단풍잎들이 우리 머리 위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단풍과 문우들의 절묘한 만남이었다. 누군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건 낙엽비라고 말해주었다. 낙엽은 내려앉는 것이 아쉬운 듯 뱅뱅 돌며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쏟아졌으니 낙엽비라 한들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낙엽비라, 과연 수필가다운 묘사였다. 한 문우는 온몸으로 낙엽을 받으며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가을은 그의 것이 되었다. 강천산의 단풍은 그야말로 시절 만났다.

  골짜기 건너편에 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하얀 색깔의 잎들을 매달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도 단풍이다.’ 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붉고 노란 단풍에만 빠져있는 사람들은 이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 이 가을을 위해 그들도 나름의 진통을 겪으며 치장을 했거늘, 이를 몰라주니 유심(有心)하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나는 특별한 단풍이 보이면 카메라 셔터를 들이대는 취향이 있다. 당장 건너가서 손길을 주고 싶었지만, 골짜기가 가로막고 있어 대신 사진 속으로 모셔왔다. 화려한 단풍에는 탄성을 지르지만, 수수한 치장으로는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산에서도 통하는가 보다. 산에는 예쁜 색깔의 단풍 말고도 수수한 단풍들이 얼마든지 있다. 만산홍엽도 꾸밈없는 그들이 있기에 한결 돋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이치 또한 그러할 것이다. 자연처럼 이런저런 색깔을 내며 조화를 이루어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순리일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문우들은 산을 빠져나오고서야 비로소 허기를 호소했다. 만사를 내려놓고 단풍의 정취에 흠뻑 젖다 보니 꼬르륵 소리도 못 들은 것이다. 읍내의 한 식당에 들어서니 푸짐하게 차려진 교자상이 들어왔다. 기다리다 지친 문우들은 그제야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하는데, 강천산은 경후식(景後食)이다.

  산에서는 단풍 정식을 받았는데, 식당에서는 한정식이었다. 산에서는 아름다운 정취로 마음을 채우고 식당에서는 촌스런 맛으로 배를 불렸다. 이날은 다 진수성찬이었다. 김학 교수님 앞에는 깻잎 접시가 세 개나 쌓였다. 나는 네댓 끼쯤 먹을 분량이다. 한 잎씩 걷어 올리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깻잎의 독특한 향과 맛에 빠지신 것 같다. 비타민과 미네랄은 물론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어쨌든 교수님 깻잎 사랑은 참으로 유별났다.

  수필반 문우들은 강천산 골짜기에 행복한 이야기를 흩어놓고 대신 수필거리를 얻어 왔다. 이날 한나절은 자연의 고마움을 심신으로 체험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왔다가 많은 것을 들고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강천산 풍광의 잔상(殘像)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문우들의 이야기들도 귀속에서 뱅뱅 돌았다. (201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