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치와 사부곡(思父曲)
- 2010. 11. 2 -
퇴임 후 처음 맞은 아버지 기일의 다음날, 산소에 들러 퇴임 보고를 드리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간단한 제물과 아버지께 드릴 물건들을 챙기는 동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가슴이 절로 먹먹해졌습니다.
지금부터 42년 전, 내가 교직 생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시의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아버지의 신념과 결단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첫 출근하던 날 난생 처음으로 양복을 차려입고 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42년 후 정년퇴임을 하던 지난봄엔, 지인들에게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작은 책을 통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먼저 인사를 드려야 했던 아버지는 이미 18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산소에 도착한 아내와 나는 준비해 온 제물을 정성들여 차렸습니다.
퇴임에 즈음하여 받은 훈장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도 상석 위에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그리고 큰절을 올리며 무사히 퇴임했노라고 보고를 드리는 동안, 지난 일들을 반추하노라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퇴임하던 날 아버지가 옆자리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한학과 서예에 남다른 조예가 있어 가난과 싸우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으며,
이내 추천작가의 반열에까지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손수 만든 탁자 위에는 늘 문방사우가 놓여 있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낡은 탁자를 보면서도 번듯한 서탁(書卓) 하나 마련해드리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나의 무심함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여유롭게 재능을 널리 펼칠 즈음, 이른 연세에 홀연히 떠나셨으니, 자식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부르는 나의 사부곡(思父曲)이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이 하나이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곰소 어시장에 들렀는데, 실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밥상 위에 어쩌다 한 번씩 오르던 구운 풀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이라 어머니가 특별히 챙기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걸 한 점 먹고 싶어 연거푸 침만 삼켰는데도,
아버지는 용케도 그걸 알아보시고 한 도막을 슬며시 내 밥 위에 얹어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짚 불 위에 굽고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그 풀치의 고소한 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입 안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나에게 풀치는 특별한 생선이며, 요즘엔 그리움까지 곁들이게 되어 애틋한 존재로 격상되었습니다.
하고많은 싱싱한 생선들을 마다하고 추억의 풀치 한 꾸러미를 샀으니,
고소하게 구워서 오늘 저녁 내 밥상의 한가운데에 놓으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아버지와 풀치를 떠올리며, 정철의 ‘훈민가’를 사부곡 삼아 불러볼까 합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아버지가 남기신 우리집 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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