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걸 잊어야지
10여년 전에 내가 가르치던 아이 중 한 명을 깜빡 망각하고 가슴을 친 일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시골 학교였으니, 내가 가르치던 2학년 아이들이라야 고작 10명이었습니다.
내 양 손가락 수 만큼인 아이들 중에 한 아이를 잊다니,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땐 누구나 한번쯤은 청소 시간에 게으름을 부리거나, 노는 데 빠져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도 청소 시간에 비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다가 내 눈에 띤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나무란 뒤에 교실 구석에 무릎을 꿇려 두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그후로 내가 그 아이에게 부여한 상황을 그만 잊고 말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급식을 마치고 느긋하게 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엔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읺았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 반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교실 구석에 남겨 둔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나는 냅다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그 아이는 그때까지도 내가 지시한 벌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일으켜 세웠으나,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급식을 빼앗은 꼴이 되었으니, 배고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을까?
청소 시간에 장난을 좀 쳤다는 이유로, 내가 취했던 조치와 그 후의 망각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서둘러 가게로 달려가 급식 대용으로 빵을 사서 그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지만,
친구들과 오손도손 먹었어야 할 급식에 비해서는 너무 삭막한 식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으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마치 '선생님, 너무 걱정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라는 표정으로…….
그로 인해 내 마음이 다소나마 가벼워졌으니, 그 아이가 나를 위로한 꼴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 일로 인해 교사로서 미흡했던 따뜻함과 자상함이라는 덕목을 다시 챙겨볼 수 있었습니다.
그후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지 1년여 후에, 그 학교에 들렀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아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 내 손을 곽 잡아주며,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그 후로 안일했던 나의 처방과 경솔함이 부른 망각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 2010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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