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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이야기/*********은백빛

사고의 흔적이 행운의 그림이 된 사연

사고의 흔적이 행운의 그림이 된 사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온 나는, 주방의 천정과 벽면에 온통 붉은 물감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밤중에 누가 와서 그림을 그린 건 아닐 터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아내는, 생각할수록 우스운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 전말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어제 밤에 내가 잠든 사이에 아내의 친구인 아줌마 둘이 우리 집에 들렀던가 봅니다.

밤 마실을 온대다 나의 이른 잠에 방해될까봐, 수다도 웃음도 자제하느라 무진 애를 썼더랍니다.  

어런저런 이야기들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익어갈 즈음, 아내는 아줌마들에게 제공할 간식거리가 찾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술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던 아내는, 작은방에 있는 찬장 안을 뒤적인 끝에

1.5리터짜리 패트병에 들어있는 복분자술 한 병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담근 시기나 상태가 모호했던 그 술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찬장의 구석에 쳐박혀 있었으니, 보나마나 그 술병은 탱탱하니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은 들떠있었을 아내가 무심코 뚜껑을 여는 순간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패트 병 안의 빨간 액체가 천정과 벽면으로 솓구쳤습니다.

병 안에 그득차 있던 가스가 술과 함께 한거번에 분출된 것이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아줌마들의 모습은 불문가지입니다.

잠시 뒤 상황을 파악한 후에야 빨간 물을 뒤집어쓴 서로의 모습을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복분자술의 일부는 한 아줌마의 머리 위로 쏟아졌는데,빨간 물이 줄줄 흐르는 흐르는 순간 머리가 터진 것으로 착각했더랍니다. 

그 아줌마는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병 안에는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으니, 의도적인 발사라면 완전무결한 성공이었습니다.

그 때 방 안에 있던 나는 잠결에 '펑'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아줌마들의 웃음소리기 들리길래별일 아닐 가라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내가 곤히 잠자고 있는 사이에 사고의 흔적들을 없애느라  한밤중까지 닦고 치우며 또 한 차례 법석을 피웠다 합니다. 

듣고 있으려니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아내는 천정의 흔적을 올려다보며 승천하는 용의 형상이라 했습니다.

유심히 쳐다보니 용의 머리와 꼬리의 모습조차 그럴 듯했니다.

우리 부부는, 용은 길조이니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며 또한번 웃었습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니 사고의 흔적이 품격있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미 없질러진 물은 되담을 수 없는 것. 매사는 생각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도배를 다시 하려면 돈 좀 들여야 할 테지만, 당분간은 행운을 위해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습니다.

 

                                                                             - 2009년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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