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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물길 따라 사람 냄새 자욱


한여름 밤 물길 따라 사람 냄새 자욱
<문경근 컬럼> 정읍천변 산책길에 만난 사람들
2010 년 08 월 12 일 목15:56:12 문경근

   
▲ 정읍천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향기가 난다
한여름 밤의 정읍천변은 사람 냄새가 자욱합니다.
산책길에 나서면, 아는 사람 두어 명쯤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부분 가벼운 걷기운동을 하며 밤새도록 이어지는 무더위를 견뎌 보려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정읍천은 내장산을 비롯한 부근의 높고 낮은 산골짜기를 근원으로 하는 작지만 정겨운 물길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동교에서 연지교까지 시내를 흐르는 3킬로미터 정도의 천변은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입니다.

특히 여름밤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한여름 밤 천변의 정읍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운동을 하는 사람, 한가로이 산책하는 사람,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사람 등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었을 정동교 아래의 물놀이장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남은 몇몇 아이들이 텀벙거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은 채 기다리는 부모의 재촉에도 아이들은 들은 척을 하지 않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도란도란 삼겹살을 굽고 있는 가족들은 부러울 게 없는 표정들입니다.
고기를 굽는 엄마, 그걸 아이들 입에 쏘옥 넣어주는 아빠 그리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아직껏 보금자리에 들지 못한 왜가리 한 마리가 그들 곁에서 잠시 기웃거리다 날아갑니다.
하얀 조명이 작은 농구장을 대낮처럼 밝혀줍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은 윗옷을 벗어버린 채 젊음을 뽐내고 있습니다.
젊음은 여간해서는 지치지도 않나 봅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부러운 것은 젊음입니다. 젊음은 언제 보아도 힘차고 아름답습니다.

초산교는 정읍천변의 가운데쯤에 자리잡고 있어 정동교의 물놀이장과 샘골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곳입니다.
주로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정동교 부근이 동적(動的)이라면, 초산교 밑은 주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여들어 정적(靜的)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한낮엔 빈틈이 거의 없었을 평상에는 저녁이 되면서 대부분 귀가한 듯 빈자리가 더 많습니다.
샘골다리에 가까워지자, 경쾌한 트럼펫 연주 소리가 다리의 천정에 공명되어 더욱 웅장하게 들려옵니다.
가까이 가보니 어스름한 다리 밑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는 한 청년이 보입니다.
청년의 주위로 모인 사람들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내고, 건너편 둔치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큰 소리로 앙코르를 외쳐대기도 합니다.
때로는 신나는 곡을 때로는 애절한 곡을 토해내는 이색적인 트럼펫 독주는 지나가는 산책객들의 발걸음을 한동안 멈추게 합니다.

샘골 다리를 지나면 출발점인 정동교에서 2,200미터 지점에 내 나름대로 정한 반환점이 있습니다.
그 곳을 돌아서 반대편 천변을 따라 걸으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천변의 상층부에 심어놓은 갖가지 야생화 중에는 어둠 속에서도 가로등 불빛을 받아 어렴풋이 꽃 모양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산이나 들에 있어야 할! 야생화�湧�낯선 땅에 옮겨와 이제야 자리를 잡은 듯 의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밈없는 모습으로 풋풋한 내음을 풍기며 코끝을 간질입니다.

천변의 산책로를 따라 분주히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입니다.
팔을 힘차게 내저으며 달리듯이 걷는 젊은이는 내 앞을 쌩쌩 지나쳐버립니다.
그 뒤를 가볍게 뜀박질하는 중년 남자가 따르지만 조금은 벅차 보입니다.
아기가 탄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걷고 있는 젊은 부부는 운동보다 희망을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습니다.
장애인 남편이 탄 휠체어를 천천히 밀고 가는 착한 아내의 모습은 유난히 정겨워 보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천변은 고소한 냄새가 번집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씽씽 지나갑니다.
뒤태를 보니 오전에 만났던 마음씨 좋은 친구가 분명합니다.
어르신 한 분이 휴대폰으로 친구를 부르는 걸 보니, 아마 혼자 걷기가 너무 적적한 가 봅니다.
모자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정답게 걸어갑니다.
수험생인 듯한 아들의 가방은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어머니가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덜어줍니다.
 ‘조금만 참거라. 우리 아들 화이팅!’
 마중 나온 어머니가 했을 법한 말을 생각하며, 오늘 밤 스쳐간 모든 사람들의 일들이 잘 풀리기를 빌어봅니다.

한 시간 반 만에 출발점인 정동교에 도착하니, 옷은 촉촉이 젖었지만 몸은 한결 가쁜합니다.
정읍천변은 멈춰 있는 사람들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한여름 밤의 물길 주변은 활기가 넘치고 정겹습니다.
내가 한여름 밤에 천변을 찾는 이유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덤으로 보통 사람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거양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덤이 더 커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 정겨운 사람 냄새 그득한 정읍천 가까이 사는 것도 나에겐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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