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회의 주훈(週訓) 속에 비친 세상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의 어린이회에 대한 기억을 한두 가지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회는 소위 똑똑한 아이들의 입씨름 장이 되기도 하지만,
제법 그럴듯한 건의사항이 나와 학교 측에 전달되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다음 주에 지킬 주훈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이름이 주생활목표로 바뀌었지만...)
어쨌든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온 주훈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학교나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매우 흥미롭습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국민학교 시절에 등장했던 몇 가지 주훈을 살펴보면, 당시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반추할 수 있습니다.
'결석을 하지 말자.', 풋과일을 따먹지 말자.', '남의 신발을 훔치지 말자.' 등은
그 시절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대표적 주훈이었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농번기가 되면 집에서 어른들을 도우며 한몫 단단히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가을이면 부지깽이도 덤빈다.' 했을까.
한창 바쁠 때면 아이들의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었으며,
결석하는 아이들의 수가 점차 늘다보면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때맞춰 어린이회 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훈이 '결석을 하지 말자.'였으니,
농촌의 아이들은 절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가 봅니다. 이쯤되면 학교마다 농번기 방학으로 접어드는 것이 자연스런 순서였습니다.
요즘은 '결석을 하지 말자.'라는 주생활목표도 볼 수 없거니와
결석하는 학생이 극히 적어 학년말이면 거의 다 개근상을 손에 쥐게 되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절 어린이회 시간에 한번쯤 등장하는 또하나의 주훈은 '풋과일을 따먹지 말자.' 였습니다.
보리밥 도시락 몇 숟갈로 대충 점심을 때운 아이들의 하굣길은 허기지고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과수원 옆을 지날 때면 채 익지도 않은 풋사과의 유혹을 견디기 쉽지 않습니다.
대담한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한 개 쯤 손에 쥐어보지만, 주인의 호통에 혼쭐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계절따라 풋보리, 무, 고구마, 풋사과 등이 하굣길 배고픈 아이들의 공략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선생님들의 질책에 떨어지고, 아이들은 어린이회 시간에 '풋과일을 따먹지 말자.' 라며 다짐했습니다.
당시 가난의 증표 중 하나는 맨발 등교였습니다. 맨발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의 가난을 몸으로 때우며 견뎠습니다.
겨우 명절 때나 얻어 신었던 고무신을 행여 분실하기라도 하면,
부모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며칠 동안 기가 죽어 지내기 마련이었습니다.
그일은 한동안 부끄럽고 슬픈 맨발 등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주훈이 '남의 신발을 훔치지 말자.'였으니, 이는 삶의 애환이 아이들의 눈에 투영된 것이었습니다.
요즘도 드물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신발을 분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인이 본인의 실수나 상대방을 골탕 먹이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니, 그 배경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초등학교에 자주 등장하는 주생활목표를 들여다보면, 예전과는 그 내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 따라 주훈도 변화를 가져왔지만,사회 현상을 반영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돌림을 하지 말자.', '자연을 사랑하자.' '질서를 지키자.', '에너지를 아끼자.' 등
요즘 어린이들 입을 통해서 등장하는 주생활목표는 매우 다양해진 것이 특징입니다.
사회현상이 그만큼 복잡다단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자.'와 '인사를 잘 하자' 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주훈의 목록 속에 건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최고의 주제는, 여전히 공부와 인성인가 봅니다.
베란다에서 찰칵! 오랜만에 비는 멈췄지만 아직도 비를 머금고 있는 뭉게구름...
태인-정읍간 국도변에서 내장산을 바라보며....
햇빛은 쨍쨍~ 땀은 줄줄~ 칠보산 위에 비를 품고 있는 구름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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