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국 퇴직공무원 사회공헌활동 우수사례 공모)/장려상
다시 교단에 서다.
정읍교육삼락회 교육봉사 팀
작성자 문 경 근
초등학생 인성교육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협력학교를 찾아가 수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양복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매니, 제법 선생님 같은 깔끔한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 앞에 서려면 우선 차림부터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새내기 교사 시절부터 몸에 밴 고장관념이자 자산이기도 합니다. 나를 비롯하여 이날 각 학교로 수업을 하러 가는 교육봉사 팀원 모두가 은퇴하기 전 교단 교사 시절엔 한가락 했던 수업의 베테랑들이었습니다.
미리 작성된 수업 계획안을 보면서 어젯밤에도 워밍업을 해두기는 했지만, 집을 떠나기 전에도 마음가짐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다른 팀원들로 마찬가지이지만 이날 수업의 주제는 효행을 비롯한 인성 관련 덕목들이었습니다. 우리 팀이 공동으로 만든 교재인 ‘명심보감 익히기’ 등 몇 가지 자료도 챙겼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업은 계획대로 잘 진행될까? 42여년을 아이들 가르친 일에 종사했던 나이지만, 다시 교단에 오르려니 설렘과 기대가 교차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엔 아직 녹슬지 않은 수업 전문가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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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시절 출근 첫날의 설렘 같은 기분으로 교문에 들어섰습니다. 십여 년 전에 이 학교가 개교할 때 교감으로서, 학교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기 위해 나름대로 정열을 바쳤던 곳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학교와 아이들에게 특별한 애착이 있었습니다.
“선배님, 어서 오십시오.”
현관까지 나와 맞이해 준 교장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주시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교단에 올라섰습니다. 이 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의 일화를 시작으로 수업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날 수업을 받고 있는 4학년 아이들과 학교의 나이가 똑같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아이들의 호기심과 집중력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바람이 난 나는, 학교 주변 마을이 옛날에 마곡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유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 관심의 끈을 이어갔습니다. 수업의 도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셈이었습니다. 퇴임한 이후로 무디어졌던 기술이 되살아났는지 수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아이들의 이탈 행동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간이 들어왔던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이 수업 중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간 나는, 재미있는 예화를 곁들이며, 준비해간 ‘명심보감 익히기’의 활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수업에 가장 열심히 참여한 학생을 아이들로부터 직접 추천 받았습니다. 그리고 퇴임에 즈음하여 내가 쓴 자서전인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한 권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책을 몇 권을 더 갖고 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의외로 큰 호응을 받은 나는 아이들의 박수 속에 교단을 내려왔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뛰쳐나오더니 종이와 사인펜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양 선뜻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복도로 나오자, 한 아이가 주스 한 병을 들고 뛰어 나오더니 한 컵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많이 드세요."
나는 이날 뜻밖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주스를 마시며, 아이들의 순수한 정성에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요즘 교육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학교는 여전히 꿈의 산실이고, 아이들은 최고의 희망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래서 교육에 대한 기대의 끈은 결코 놓을 수가 없나 봅니다.
퇴임 후에도 매년 4월초가 되면 두 세 시간씩 다시 교단에 서는 일을 시작한 지 3년째입니다. 내가 소속된 단체인 ‘정읍교육삼락회’는 정읍 지역 퇴직 교원들로 구성되었으며 평생학습, 평생교육, 평생봉사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안에 교육 봉사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부서로 10명을 구성된 교육봉사 팀이 있는데, 주로 청소년 인성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은 2011년부터지만, 정읍교육삼락회 교육봉사 팀이 초등학생의 인성교육 지원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부터였습니다.
이 일은 최근 청소년 인성 교육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면서, 전직 교육자로서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게 된 활동입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가치관이나 일탈 행동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른 인성을 입이 아프도록 강조하며 반생을 보낸 은퇴 교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정읍교육삼락회 교육봉사 팀은 팀장의 주도 아래 몇 가지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학교의 협조를 얻어 인성교육 봉사에 나서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학교에서도 교육 경험이 풍부한 은퇴 교원들이 청소년 인성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청소년 인성교육 지원 프로그램은 교재 제작, 수업 전개, 자율적 실천 기록, 우수 학생 시상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초등학생의 인성교육을 돕기 위한 교재로 ‘바른 사람이 가는 길, 명심보감 익히기’를 직접 제작하여 협력학교에 배포하여 활용토록 했습니다. 40여 년간의 현장교육 경험과 학생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만든 실천 중심의 교재로 꽤 심혈을 기울인 자료입니다. 이 교재는 본회 교육봉사 팀의 활용법 지도와 담임교사의 지원만으로도 학생들이 스스로 익히고 실천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협력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담임교사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가 갈수록 호응이 높아져 우리 팀의 교육 봉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었으며, 지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게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매년 11월말이면 한 해 동안의 활동을 결산하는 행사도 가졌습니다. 열심히 참여한 학생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각 협력학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실천하고 기록한 실적물을 제출받았는데, 이들의 기록물들은 하나같이 진솔하고 꼼꼼했습니다.
회원들과 교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서는 박수와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 바른 인성이 조금씩 더 넓게 자리 잡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먼 훗날 바르고 당당한 한국인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정읍교육삼락회 교육봉사 팀의 작지만 소중한 시도가 학생들의 바른 인성 다지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해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 2013.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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