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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시작하며

머리글

     (자전적 에세이집을 내며)         

 

                        머 리 글 

 

지금까지 내가 살아 왔던 인생 중에 14년 동안은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42년 동안은 선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왔습니다. 

이렇듯 지나온 햇수로 보면 학교는 내가 살아온 세상이었으며, 교육은 곧 나의 삶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자기 세대가 가장 힘들게 살아왔으며 지금은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에 나온 것은 해방과 6.25의 중간쯤이었으니, 

혼돈과 가난의 와중에서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6.25 전쟁을 비롯한 온갖 사회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잘 견디며 여기까지 왔으니,

내 또래들의 살아온 길도 험난하기로는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 또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때가 좋았지. 그땐 사람사는 정이 있었는데……" 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곤 합니다.

그 동안 앞만 보면서 달려왔지만, 요즘은 자주 지나간 세월이 눈에 밟힙니다. 

친구들도 다 그런다 합니다.

 

나도 꽤 먼 길을 달려왔는데도 되돌아보면 엊그제 일처럼 너무 또렷하여 들춰볼 수 밖에 없는 삶의 편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크고 높은 것을 이루지 못해 후회가 된다거나, 

넉넉하게 모으지 못해 아쉬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두툼한 손, 아버지의 여원 얼굴, 아내의 기름끼 없는 머리카락, 아이들의 빈 주머니…….

이렇듯 오히려 작은 일, 가까운 일에 대한 소중함을 왜 진즉 알아채지 못했는가를 반추하노라면 가슴이 절로 저려옵니다.    

선생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학교 일을 핑계로 가족들을 따숩게 챙기지 못한 것도 많이 아쉽습니다.

선생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는 일도, 가족을 돌보는 일도 척척 잘만 하던데 말입니다.

선생으로 발령을 받은 첫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집을 나선 후

이제야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려니, 무려 42년만에 귀가한 듯 많이 쑥스럽기도 합니다.

 

나이 예순을 넘어서면 이순(耳順)이라 하여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고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원만하려면 더 다듬어야 하고  이해하려면 아직도 마음을 더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내 나이가 예순을 넘었을 지언정 아직 이순이라 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뒤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내 나이 예순값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같은 강물에 결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과거의 끈을 놓을 수도 놓아지지도 않는 게 삶인가 봅니다.

그러나 지난 일에만 매어 있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어제를 돌아보며 내일을 채우는 시작으로 삼으려는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나는 밥상 위에 음식을 차리는 기분으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밥상이라 하면 자전적 이야기들은 내가 챙긴 음식들입니다. 이 밥상에 차린 음식들은 나 자신이고 내 생애입니다.

내가 차린 음식 중에는 요즘 것과 묵은 것을 고루 챙겨 구색을 맞추려 했지만. 내가 먹어온 음식 그대로입니다.

결코 화려함도 꾸밈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밥상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차렸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대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는 길에 들여다보는 이가 있으면, 선뜻 드시게 하려 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다 그렇듯, 글쓰는 솜씨도 어설프거니와 이야기거리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하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편린들은 오직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내 기억으로 대답할 수 있을 때, 내 삶의 몇 조각이라도 써두는 것이 내 인생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름대로의 용기를 내어 난생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햇살 따사로운 창가에 앉아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지긋이 웃음 지으리라. 

아이들이 내 삶에 대해 물을 때도 이 책으로 대답하리라. 

그리고 이 책의 지난 이야기들을 통하여 남은 세월을 보다 멋지게 채우는 시작으로 삼으리라.

교직생활 42년의 완주를 응원해준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